기아 머큐리 세이블
부족했던 라인업 보완
최고의 수입차였다?

한때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수입차가 있었다. 현재의 한국GM과는 조금 다른 결이었는데, 바로 기아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수입했던 머큐리 세이블이다. 머큐리는 인지도가 높진 않아도, 포드의 또 다른 럭셔리 브랜드였다. 엄밀히 따지면 포드의 럭셔리 브랜드는 링컨이지만, 두 브랜드 간의 틈이 조금 큰 편이라 그 사이를 메꾸고자 기획된 브랜드였다.
생각보다 포드가 한국 자동차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컸는데, 현대차가 처음 손잡았던 브랜드가 포드였고 그다음 손잡은 브랜드가 기아였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기아는 고급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모델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아직 출시하기엔 이른 시기였다. 그래서 고급 세단 라인업의 빈자리를 메꾸고자 세이블을 들여왔는데, 이 차가 기아의 마크를 달고 나와서일까? 당시 수입차 중에선 거부감이 적었고, 적절한 가격 설정도 판매량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꽤 획기적인 디자인
유선형의 바디
당시 머큐리 세이블이 한국 시장에 들어왔을 때의 파급력은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만 해도 각을 잔뜩 세워 위압감을 주기 바빴던 한국 세단과는 다르게, C필러를 넓게 터 에어로 다이나믹 스타일을 강조할 뿐 아니라 전 후면부를 곡선으로 매끄럽게 이은 디자인은 매우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아울러 리어 휠 하우스의 디자인을 초대 그랜저와 같이 일자로 쭉 뻗게 디자인한 것은 ‘고급차’라는 인식을 심기 충분했다.
아울러 이 차의 전면부에 특이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가 맞닿아있지 않은 지점이었다. 머큐리 세이블은 당시 국산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디자인과 다르게 라디에이터 그릴이 있을 법한 자리를 라이트 바로 채워 넣어, 야간에 라이트를 킨 세이블을 마주치면 그 존재감을 뽐냈다고 전해진다. 기아가 이 디자인을 꽤 눈여겨봤었는지 후대에 이 라이트바 디자인은 기아의 원 박스형 승합차 프레지오로 이어진다는 후문이 있다.


2세대까지 이어졌다
후면부 닮은 꼴도 있다?
머큐리 세이블은 비단 잠시 수입되었던 수입 세단에서 그치지 않았다. 세이블은 1세대의 스킨 체인지 격이었던 2세대 모델까지 기아를 통해 판매된 역사가 있다. 더욱 둥글게 다듬은 디자인은 당시로서 매우 현대적이었다고 평가된다. 아울러 기아의 서비스망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해, 후속 모델 격인 포텐샤가 시장에서 확실히 자리 잡기 전까지 판매량을 이어갔다.
아울러 세이블에는 후문이 하나 있는데, 그는 바로 현대차 Y3 쏘나타 2와 후면부가 비슷하다는 평가다. 당시 세이블은 1995년까지 판매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대차가 Y3 쏘나타를 기획하던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얻고자 노력하던 현대차의 눈에 들어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울러 세이블은 기아의 세피아와도 프로포션이 비슷한데, 이는 세이블의 디자인에 참여한 디자이너가 기아의 디자인 고문으로 재직하며 생겨난 에피소드라고 전해진다. 여러모로 한국차 역사에 획을 그은 모델인 셈이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현세대 K9의 조상 격
비록 세이블은 수입차였다는 사실과 오랜 세월의 여파로 인해 도로 위에서 보기는 어려워졌다. 25년 전인 2000년대 초반에는 도로 위에서 종종 보이던 차종이었음을 기억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지만 세이블이 쓴 역사는 그리 미약하진 않다. 당시 유선형의 디자인을 과감히 시장에 내보였으며, 수입차가 한국 시장을 공략할 땐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는 것을 알린 차종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포텐샤를 지나 엔터프라이즈로 이어져 현세대에는 K9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이블 자체가 고유 모델이 아니었으니 그 흔적을 기아가 굳이 꺼내 오진 않아도, 기아에서 현대적인 대형 세단을 처음 성공시킨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제 원 회사인 머큐리마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운데, 세이블을 기억하는 이가 그를 도로 위에서 마주한다면 조금은 반가운 기색을 내비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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