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모빌리티가 만든 오픈카?
쌍용차 시절 칼리스타 생산
이단적 행보가 돋보인 모델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 이제는 새 이름을 달고 새롭게 태어난 국산차 브랜드가 있으니, 바로 KG모빌리티다.
토레스의 인기에 판매량을 회복하며 이제는 ‘중소기업의 기적’ 그 자체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KG모빌리티.
여러분들은 해당 브랜드가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그 누구도 긋지 못한 커다란 한 획을 그은 적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야기는 KG모빌리티가 쌍용차로 불렸던 과거, 1992년으로 향한다.
이 시기 쌍용차는 현대차는 물론 국내 그 어떤 자동차 업체도 생각해본 적 없는 모델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그 정체는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전무후무한 모델로 꼽혔던 로드스터 스포츠카인 칼리스타다. 이제는 올드카 반영에 올라선 쌍용차의 칼리스타, 해당 차량과 관련된 이모저모에 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회장부터 자동차 마니아
팬더 인수 후 생산 시작
쌍용그룹의 회장인 김석원은 엄청난 자동차 마니아로 유명했다.
국내 유일 포르쉐 959 오너로도 유명했으며, 집에서도 직접 자동차를 분해 및 조립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김석원 회장이 당시 인수한 동아자동차(현 KG모빌리티)의 주요 모델은 버스, 덤프트럭, 레미콘 등이었고, SUV 생산은 고작 2년 밖에 되지 않은 업체였다는 점이다.
김석원 회장은 동아자동차를 통해 만들고자 했던 차량은 대중 세단도 아니고 럭셔리 세단과 스포츠카였다.
그는 자신의 원대한 꿈을 위한 첫 시도가 70년대에 이미 부도가 난 영국의 스포츠카 브랜드인 팬더 웨스트윈즈를 인수했다. 이후 영국에 있던 팬더의 생산 설비를 모조리 평택공장으로 가져왔는데, 이 때 생산하기 시작한 차량이 바로 칼리스타였다.
국내에선 생소했던 로드스터
생산도 판매도 난도 높았다
지금이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당시 국내는 로드스터라는 명칭도 생소했던 시절이었다.
로드스터는 컨버터블의 하위 장르로 시트가 2개 이하로 탑재되어있으며, 지붕이 없거나 열리는 차량을 일컫는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생산된 로드스터는 대표적으로 기아의 엘란, 한국GM의 G2X, 그리고 쌍용의 칼리스타가 유일하다.
한국 클래식카 문화를 부활시키겠다는 김석원 회장의 의지 속 그의 도전이 실제로 시작되었다.
칼리스타의 제작은 모든 과정이 수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1992년 처음 수립된 판매 목표는 연간 내수 100대와 수출 200대였다. 칼리스타는 당시 팬더의 생산라인이 옮겨진 평택에서 수가공 라인을 통해 조립되기 시작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최종 생산 대수 78대
하지만 현실은 매웠다. 당시 칼리스타의 출고가는 2,000cc V6 엔진 모델이 3,300만 원, 3,000cc V6 엔진 모델이 3,800만 원에 달했다. 출고가 시작되었던 1992년 당시는 국산 차 중에서 정점에 도달했던 2세대 그랜저의 최고급 사양인 3.0 골드가 3,500만 원이었으며, 그 외의 국산 최고급 세단의 가격이 1,800만 원 언저리에 가격이 책정되던 시기였다.
이런 당시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최대 3,800만 원에 달하는 데다가 2인승 로드스터라는 생소한 카테고리,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레트로 디자인은 당시 트렌드를 기준으로 벗어나 있어도 너무 벗어나 있던 모델이었다. 결국 기존의 목표치가 무색할 정도로 1994년에 생산이 멈췄고, 판매량도 연 20대 내외에 불과했다고 한다. 단종 당시에 최종 생산량이 78대였다고 하니 얼마나 시대를 고려하지 않은 출시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제는 올드카 반영에 올라선 칼리스타.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칼리스타의 개체 수는 2010년 기준으로 16대라고 한다. 이미 출고부터 비싼 값을 자랑한 칼리스타는 이제 희소성까지 더해지면서 가격이 더 올랐다. 2016년 이루어진 칼리스타 중고 거래는 31,900km의 낮은 주행거리까지 더해져 5,800만 원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댓글1
픽
시장성이 커보임...요즘 고령화로 가고 잇고 또 중장년 층이 부를 가지고 이거든....일본도 그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