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엔비디아와 협력한다
가상 세계에서 시뮬레이션
더 안전한 소프트웨어 만든다
자동차 산업이 기술 혁신의 정점에 서 있는 가운데, 볼보자동차는 다시 한번 ‘안전’이라는 본질적인 가치에 기술을 접목시키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지난 ‘엔비디아(NVIDIA) 2025 GTC 컨퍼런스’에서 볼보는 AI 기반의 가상 세계를 활용해 차세대 안전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그 중심에는 실제 도로 위 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교한 시뮬레이션과, 이를 통해 사고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방지하려는 시도가 있다. 볼보는 이 가상 세계를 통해 단순히 사고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긴급 제동, 조향 회피, 수동 개입 등 다양한 변수에 따른 대응 방식을 AI에게 학습시켜, 인간의 한계를 넘는 대응 속도와 정밀도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가우시안 스플래팅
재현을 넘어 예측으로
볼보가 이 야심 찬 프로젝트에 활용하는 핵심 기술은 바로 ‘가우시안 스플래팅(Gaussian Splatting)’이다. 이는 방대한 3D 데이터를 고해상도로 가공하여 현실감 높은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축하는 컴퓨테이셔널 기술이다. 기존의 CG 수준을 넘어, 실제와 구분이 어려운 수준으로 가상의 도로, 차량, 보행자, 장애물 등을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볼보는 수백만 건의 실제 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천 가지의 변형된 사고 시나리오를 자동 생성하고, 이를 통해 자사의 AI 알고리즘이 더욱 빠르고 정교하게 사고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학습시키고 있다. 가상의 보행자를 삽입하거나 교통 흐름을 변경하는 등, 기존 실험실 기반 테스트로는 불가능했던 수많은 변수 실험이 가능해진 것이다.
알윈 바케네스 글로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총괄은 “지금 우리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 잠재적인 위험을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중”이라며,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던 수준의 시뮬레이션이 볼보의 안전 기술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AI 슈퍼컴퓨팅 플랫폼
전기차의 두뇌가 되다
볼보의 이 같은 기술적 진보는 단순히 실험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향후 출시될 차세대 볼보 전기차에는 엔비디아의 DGX 시스템 기반 AI 슈퍼컴퓨팅 플랫폼이 탑재된다. 이는 차량 내외부에 장착된 센서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차량 주변의 모든 위험 요소를 정밀하게 인지하고 판단하는 ‘지능형 안전 플랫폼’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DGX 시스템은 AI 알고리즘의 학습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동시에, 다양한 교통 환경에서의 대응 시나리오를 차량 내에서 바로 구현해낼 수 있다. 이로써 전기차는 단순한 탈것이 아닌, 스스로 사고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지능형 존재로 진화하게 된다.
이러한 기술은 단순한 성능 경쟁이 아닌, ‘생명을 지키는 기술’이라는 볼보 고유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볼보가 전기차 시대에도 여전히 ‘가장 안전한 자동차’라는 명성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끊임없는 기술 투자와 철학적 일관성에 있다.
데이터로 설계하는 안전
철학을 구현하는 기술
볼보의 안전 철학은 AI 이전부터 철저한 실증 중심으로 축적되어 왔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자체 사고 조사팀은 실제 사고 현장을 방문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왔다. 이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은 경추 보호 시스템이나 측면 충돌 보호 시스템 같은 혁신적인 안전 기술로 이어졌다.
이제 볼보는 이 실증 데이터를 AI 기술과 융합해 더욱 진화된 형태의 안전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극히 드문 사고 유형까지도 가상 세계에서 수천 번 재현하며 대응책을 마련하는 방식은, 단순한 사고 예방을 넘어 ‘예측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접근이다.
젠스액트(Zenseact)와의 협력을 통해 자체 가상 환경을 설계하고, 소프트웨어 테스트와 검증을 병행하는 볼보의 전략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기술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기술 독립성과 브랜드 철학의 완벽한 결합으로, 향후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안전 그 너머 목표
‘지능형 생명 보호 시스템’
결국 볼보의 목표는 단순한 충돌 방지 시스템을 뛰어넘는다. AI 기반의 가상 세계는 이제 ‘지능형 생명 보호 시스템(Intelligent Life Protection System)’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반응이 빠른 차량이 아닌, 상황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생각하는 자동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볼보는 기술을 안전의 도구로 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데이터와 AI, 그리고 인간의 생명을 향한 철학이 결합된 이 새로운 접근은 자동차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단지 더 빠르고 강한 차가 아닌, 더 똑똑하고 안전한 차가 필요한 시대다.그리고 그 시대를 여는 열쇠를, 볼보가 가장 먼저 손에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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