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민차였던 비틀
사실 히틀러 지시로 탄생?
이젠 사라진 비틀의 역사
7월 30일을 어떤 날로 기억하는가? 누군가에겐 생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헤어짐을 기억하는 날이 될 수도 있다. 2003년 7월 30일 독일의 ‘국민 자동차’인 폭스바겐의 비틀 1세대가 멕시코 공장에서 단종을 맞이한 날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차종 4위에 오른 역사적 차량의 끝이 이날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비틀은 귀여운 외모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사실 비틀은 히틀러 지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가? 1934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에게 1인당 한 대의 차를 나눠주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100km/h로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고 1,000마르크로 저렴하고 튼튼한 후륜구동차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
미국이 좋아했던 비틀
2세대는 더 강력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1세대 비틀이다. 오리지널 비틀은 공랭식 엔진을 장착한 후륜구동차였다, 후륜구동을 선택한 이유는 엔진을 뒤에 배치해서 혹시 모를 총격을 보호하고 유사시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장갑차로 운용하려던 것이었다. 최대 출력 26.6마력을 낼 수 있었고 최고 98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사실 이름은 비틀이 아니라 폭스바겐(국민차)이라고 붙여졌었다. 그러나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비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미국, 유럽까지 단종된 1세대 비틀은 푸스카란 이름으로 불리며 2003년까지 멕시코에서 생산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세대 비틀은 1994년 북미 모터쇼에서 콘셉트 카로 먼저 등장했는데, 4년 뒤 1998년 ‘뉴 비틀’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1세대 비틀과 외관만 비슷했지 속은 딴판이었다. 1,984cc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여 최대 출력 114마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전에는 없었던 앞좌석 에어백과 네 개의 바퀴 모두에 장착된 디스크 브레이크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날렵한 비틀의 탄생?
판매량 저조로 단종
3세대 비틀은 2011년 상하이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다. 이름은 ‘더 비틀’이었다. 기존 둥글둥글하던 외관 대신 날렵하고 남성스러운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직렬 4기통 엔진과 DSG 6단 듀얼클러치 변속기와 결합해 최대 출력 160마력을 낼 수 있었다. 바뀐 디자인은 당시 매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때 비틀에게 붙여진 슬픈 별명은 ‘예쁜 쓰레기’. 차량은 매우 매력적이나 다른 차량에 비해 편의성이 매우 떨어졌기에 가성비가 바닥을 쳤다. 일부 매니아들이 세컨카로 구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결국 2018년 7월 멕시코에서 마지막 생산을 마치고 비틀은 영원히 단종되었다. 이쯤 되면 7월은 비틀에게 아픈 달이나 다름없다.
비틀의 디자인은 유행?
영원히 기억될 유선형
둥근 차량을 본다면 “비틀 같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비틀하면 떠오르는 무당벌레 같은 둥글둥글한 디자인. 사실 비틀만의 고유 디자인은 아니다. 1920년에서 1930년대에 유행했던 ‘티어드롭’, 혹은 ‘스트림라인’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이다. 당시에 존재했던 메르세데스-벤츠의 120H나 170H, 타트라의 T87 등을 보면 비틀처럼 생긴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 이런 티어드롭, 스트임라인 형태의 디자인은 찾아볼 수 없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법. 현대 아이오닉 6가 바로 유선형 디자인인 스트림라인의 형태를 띠고 있다. 물론 현대자동차의 콘셉트카인 프로페시에서 만들었지만, 아직 우리에게 이런 유선형 디자인은 비틀을 생각나게 한다. 비틀은 사라졌지만, 역사엔 남았다. 역사에 남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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