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 베리타스
부족한 현지화
쉬라츠의 저주

지금은 중·소형차 생산 기지로 전락한 한국GM에도 황금기는 있었다. GM대우 초창기 시절, 완전 신차 라세티를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이 황금기를 지나는 동안에도 GM대우가 고전을 면하지 못한 시장이 있었다. 바로 대형 세단이다. 대형 세단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진출은 했으나 존재감이 없었을 뿐.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차종은 하나같이 부족한 현지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응원했던 팬층은 이를 두고 ‘쉬라츠의 저주’라고 표현했다. 쉬라츠를 간단히 짚자면, 순수 대우자동차 시절 개발했던 초대형 세단이었다. 4,000cc급 8기통 엔진을 탑재한 E 세그먼트 세단이었는데, 당시 대한민국에 드리운 IMF의 그늘 탓에 개발을 거의 마쳐놓고도 끝내 빛을 못본 비운의 세단이었다. 그런데, GM대우가 들여왔던 세단 중 그나마 나았다는 평가를 받는 차종이 있다. 오늘은 그 주인공인 베리타스를 다뤄보고자 한다.
스테이츠맨 후속작
L4X 쇼카로 먼저 공개
베리타스 이전에 스테이츠맨이 있었다. 이 스테이츠맨은 상술한 ‘부족한 현지화’의 대명사다.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의 원형은 모두 호주 시장에 주로 판매되는 모델이 원형인데, 당시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는 고사하고 풋레이크조차 넣지 않아 핸드 파킹 브레이크를 탑재한 스테이츠맨이 무려 우핸들 사양과 같이 조수석에 핸드 파킹 브레이크를 넣으며 비판을 정면으로 받았다.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파리의 연인’의 주연 배우인 박신양이 타는 차로 등장하며 흥행을 꿈꿨지만, 처참한 판매량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스테이츠맨은 얼마 후 L4x라는 이름의 후속 쇼카로 돌아온다. 이것이 바로 베리타스로 출시된 것이다. 베리타스는 스테이츠맨보다는 나은 현지화와 5,195mm에 달하는 늘씬한 전장을 앞세워 시장의 반응을 끌어 낼 수 있었다.
누굴 위한 옵션 구성인가?
성능과 휠베이스 좋았다
다만 이번에도 전작에 비해 낫다는 것이지, 현지화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전작 스테이츠맨의 과한 버튼식 센터페시아에서 벗어나 인포테인먼트 모니터를 장착한 것은 고무적이었지만, 이 인포테인먼트가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아울러 당시 경쟁 차종이었던 1세대 제네시스나 체어맨 W는 SCC와 EPB 등의 첨단 장비를 모두 장착했지만, 베리타스는 말 그대로 ‘그런 거 없다’ 수준이었다.
다만 성능에 있어선 칭찬할 부분이 있었다. 베리타스는 실제로 연식 변경과 함께 캐딜락 일부 모델의 파워트레인을 차용해 성능을 20마력 정도 개선했었다. 거기다가 후륜구동 방식을 채택해 소위 ‘뒤에서 쭉 밀어주는’ 주행 질감을 자랑했다고 알려진다. 아울러 3m가 넘는 휠베이스는 실내 거주성을 매우 쾌적하게 만들어, 1열과 2열 탑승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을 자랑했다.
스포츠성 가장 높다?
본국에선 어땠을까
베리타스가 출시되던 시기까지도 대형 세단에 다이내믹함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던 시기였다. 그나마 1세대 제네시스가 다이내믹을 표방했지만 그것도 본격적인 것은 후기형 다이내믹 에디션에서나 발현되었고, 어김없이 상위 등급엔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하며 부드러운 승차감을 지향했다. 그런 와중에 본국 격인 호주에서는 고급 세단으로 판매되지 않은 베리타스였던 만큼, 당대 대형 세단 중에는 가장 다이내믹했었다고 전해진다.
이게 한국 시장에 제대로 먹히지 않아서 그렇지, 호주에선 꽤 인기몰한 차종이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베리타스의 원형인 WM 스테이츠맨을 검색하면 튜닝까지 진행한 개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자동차 마니아는 ‘아쉬운 차종’이라며 가끔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를 회자한다. 그리 많지 않았던 판매량만큼이나 지금 도로 위에서 보기 힘든 베리타스, 가끔 길거리에서 만난다면 늘씬한 비율에 시선을 뺏길지도 모르겠다.
자동차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슈들
제보를 원한다면? 카카오톡 ☞ jebobox1@gmail.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