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 로얄 시리즈
수많은 바리에이션 존재
그랜저 대항하던 모델이었다

지금은 거의 시장을 독주하다시피 하는 현대차 그랜저. 해당 모델에도 대항마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현대차가 초대 그랜저 모델을 기획하고 출시하는 데 공헌한 것은 다름 아닌 대우자동차였다. 당시 관용차부터 고급 승용차 라인업을 휩쓸었던 것은 다름 아닌 로얄 시리즈였다. 현재는 대부분 단일 차종을 통해 시장을 공략하는 것으로 굳어진 내수 자동차 시장은, 로얄 시리즈가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있었단 사실을 모두 지워버렸다.
당시 로얄 시리즈는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했다. 그리고 그 차종은 모두 고급 승용차를 표방했기 때문에 현재의 ‘그랜저 급’으로 대표되는 준대형 세단 시장에 대우자동차의 라인업만이 가득했었다. 오늘은 로얄 라인업의 막내 격인 로얄 듀크 / 디젤부터 사령관의 자리를 맡았지만, 후술할 품질과 차별화 문제로 인해 쓸쓸히 역사 속으로 퇴역한 임페리얼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어서 추억의 향을 느끼러 출발해 보자.
시작은 레코드 로얄
오펠과 인연도 시작
그랜저 대항마 로얄. 그시작은 대우자동차 이전 신진자동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진자동차는 크라운 등을 면허 생산했던 회사인데, 토요타가 예고 없이 협력 관계에서 철수하며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그러다 GM과의 합작을 진행하게 되면서 크라운의 후속 모델 격으로 기획된 것이 레코드였다. 이후 신진자동차가 도산한 이후, 새한자동차가 출범했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우그룹이 경영권을 차지했는데, 이때 출시된 모델이 레코드 로얄이었다.
당시 2차 오일 쇼크로 인해 장관급 관용차가 4기통으로 제한되었는데, 레코드 로얄에는 엄청난 호재로 작용했다. 이때부터 커다란 차체에 경제적인 작은 엔진을 선호하는 추세가 생긴 모양이다. 당시 레코드 로얄의 기조가 된 모델은 오펠의 레코드로, 후술 될 모든 로얄 라인업에 오펠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거의 오펠이 한국에 진출한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로얄 디젤부터 시작
디젤 승용차 포문을 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는 더욱이 경제적인 자동차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그래서인지 큰 차체에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지닌 경제적인 세단을 기획하던 새한자동차는 오펠의 2,000cc급 디젤 엔진을 탑재한 로얄 디젤을 출시한다. 기아 콩코드의 디젤 사양이 등장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최초의 디젤 승용차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로얄 디젤은, 뜻하지 않게 히트를 기록하진 못했다.
당시만 해도 내연기관 기술의 발전이 현시대처럼 고도화되기 이전이었고, 디젤 엔진의 기본은 상용 라인업에 탑재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디젤 파워트레인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데에 있어 소음과 진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던 시대였다. 예상할 수 있듯, 커다란 차체에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가진 세단이 트럭과 같은 소리와 진동을 선사했다. 경제적인 것까진 좋았는데 그게 다였다. 심지어 엔진의 크기가 가솔린 대비 커지는 바람에 볼록해진 보닛은 미관을 해치는 요소로 작용했다.
로얄 XQ의 등장 및 보급
큰 차체에 1,500cc급 엔진
로얄 디젤을 시원하게 실패한 새한자동차는 그사이 대우자동차로 사명이 바뀌었다. 그리고 로얄 라인업을 채워줄 다른 차종을 기획하게 되는데, 바로 로얄 XQ의 등장이었다. 로얄 XQ는 로얄의 커다란 차체는 그대로 유지하고 무려 1,500cc급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는데, 기획 의도는 알겠으나 이 역시 시장의 호평을 받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당시는 자동차의 내구성을 확보하는 일이 지금보다 어려웠다.
결과적으론 절름발이 세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현재로 비교하면 쏘나타 디엣지의 자연 흡기 2,000cc 사양조차 동력 성능이 매우 부실하다는 혹평이 쏟아지는데, 거기에 아반떼에 장착되는 자연흡기 1,600cc 엔진을 얹었다고 상상해 보자. 겉만 중형차급이고 동력 성능은 당연하게도 준중형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실제 로얄 XQ에 장착된 엔진은 새한자동차의 맵시-나를 위한 엔진이었다고 한다.
로얄 프린스는 어때?
고급 라인업의 시작점
로얄 XQ와 로얄 디젤은 모두 고급 승용차를 표방한 로얄 시리즈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그 와중 레코드 로얄의 페이스리프트 격 모델로 시장에 등장한 로얄 프린스는 로얄 이미지에 맞는 차라고 할 수 있었다. 프린스라는 이름 자체가 왕자라는 뜻이었던 만큼, 차체를 로얄 XQ나 디젤 대비해서 고급스럽게 꾸민 것이 특징이었다. 실제 로얄 프린스는 초기 / 중기 / 후기의 디자인 형태가 계속해서 달라진다.
이는 ‘새것을 좋아하는’ 한국 시장 소비자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 자동차가 같은 이름을 쓰고 헤리티지를 강조하며, 패밀리룩을 강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을 고려해보자. 그리고 로얄 프린스는 1,900cc급과 2,000cc급 모델이 있어 로얄 XQ의 미약한 동력 성능은 쳐다볼 수 조차 없었고 눈 감고 들으면 화물차와 같았던 로얄 디젤과는 아예 격이 다른 수준이었다. 당시 대우자동차는 이 ‘프린스’라는 이름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추후엔 별개 모델로 다시 출시한다.
로얄 듀크 Hi-Fi
결론은 역사 속으로
여기서 잠시 로얄 XQ가 돌아온다. 로얄 XQ는 절름발이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는지, 꽤 고급스러운 어감의 듀크로 돌아온다. 이 로얄 듀크는 차체를 각지게 다듬어 조금 더 차체를 크게 보이는 것에 집중했다. 당시 로얄 디젤 역시 로얄 듀크와 같은 생김새를 갖도록 페이스리프트 되었었다. 다만 로얄 듀크는 뜻하지 않은 팀 킬을 당하게 된다.
당시 대우자동차는 로얄 시리즈보단 르망으로 재미를 보던 시기였다. 중형차에 1,500cc급 파워트레인은 힘이 모자란다는 인식이 이미 만연했었던 때에 르망이 1,500cc급 파워트레인, 심지어 로얄 듀크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하극상 수준이었던 2,000cc급 르망 임팩트까지 출시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자사의 르망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심지어 로얄 듀크에 적용된 휠커버는 르망의 것과 비슷했다.
대우 로얄 살롱
슈퍼살롱도 등장
여기서부터는 제대로 고급차의 향수가 배어 나온다. 대우 로얄 살롱의 등장이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크롬 라인이 두텁게 둘러 있고 각진 차체를 가진 차가 위압감을 행사하던 시기였다. 로얄 살롱은 로얄 프린스나 로얄 XQ의 그것과는 다르게 헤드램프 테두리부터 차체를 횡으로 전부 가로지르는 크롬 라인을 둘러 격을 달리했다. 그리고 후기형에 이르러서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격자형 크롬으로 디자인해 격조를 높였다.
기세를 이어, 로얄 살롱 슈퍼의 실패를 지나 슈퍼살롱이 등장한다. 이 슈퍼살롱은 실패한 로얄 살롱 슈퍼의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등장했는데, 당시 고급차의 상징과도 같았던 흰 띠 타이어가 적용된 카탈로그 이미지가 압권이었다. 아울러 로얄 살롱은 트렁크 리드에 붙은 대우 엠블렘은 제외하면 나머지 부위에 모두 단독 엠블렘을 사용해 고급화를 꾀한 흔적이 역력했다. 실내 재질도 고급스러웠고 뒷좌석 에어벤트가 적용된 점 역시 고급화의 흔적이다.
사령관급 대우 임페리얼
그리고 프린스와 브로엄
로얄 시리즈는 쏘나타 Y2와 그랜저 L카가 연이은 히트를 기록하며 고급 승용차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대우자동차 역시 이를 모르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로얄 라인업을 더욱 공고히 할 최상급 차종의 기획을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게 L6 3,000cc급 대우 임페리얼이었다. 그렇지만 임페리얼은 당시 시장에서 원하는 부드러운 6기통이 아닌 날카로운 타입의 엔진이었고, 심지어 냉각 계통에 진행된 원가절감으로 인해 잦은 품질 문제를 일으키며 1,000대도 판매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우자동차는 이후 로얄 라인업에서 프린스와 슈퍼살롱을 독립시켜 각각 대우 프린스와 대우 브로엄으로 출시한다. 외관이 크게 달라져 풀체인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프린스 / 브로엄과 로얄 시리즈가 사용했던 플랫폼은 같은 플랫폼에 껍데기만 다르다. 다만 중형 세단 시장에 독보적인 후륜구동 방식을 채택해, 뉴 프린스와 뉴 브로엄으로 단종 직전까지 오랜 시간 특유의 승차감을 앞세워 사랑받았다.
레간자와 매그너스
토스카와 말리부
프린스의 후속 격으로 레간자가 등장한 이후 프린스와 브로엄은 함께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매그너스의 비화가 있는데, 개발 초창기 매그너스는 본래 브로엄의 후속 격으로 개발되던 P100의 혈통을 이어받은 준대형 세단으로 기획되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쌍용차를 인수해 체어맨을 흡수한 대우자동차는 중형 레간자 준대형 매그너스 대형 체어맨의 라인업을 갖추고자 했지만, 우린 역사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대로 결국 체어맨이 사라지고 매그너스가 중형차로 자리매김하였다.
이후 매그너스의 스킨 체인지 모델인 토스카로 역사가 이어진다. 토스카는 4기통이 주력이던 중형차 시장에 직렬 6기통을 앞세워 부드러움을 강조했던 매그너스의 파워트레인을 그대로 이었다. 임페리얼로 실패한 직렬 6기통의 꿈을 여기서 이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토스카는 매그너스의 스킨 체인지인만큼 상품성의 한계가 명확했고 역사는 말리부로 이어졌다가 현재와 같이 명맥이 끊기게 된다. 오늘은 이렇게 로얄 시리즈를 필두로 대우자동차 중형 세단을 톺아봤다. 진한 추억의 향이 느껴지는 가운데, 언젠가 한국GM이 다시 세단 시장에 발을 들일 날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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