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총책 박 모 씨
교도소 이송 과정서 탈옥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
‘김미영 팀장입니다’로 악명을 떨친 1세대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박 모 씨가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서 탈옥한 사실이 보도되며 관심이 주목된다.
우리 정부는 탈옥한 박 모 씨를 잡기 위해 필리핀 당국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경찰청과 외교부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총책 박 모 씨는 지난달 말 필리핀의 한 교도소에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박 모 씨는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으나 현지 재판에 출석했다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도주한 사실이 드러났다.
외교부 측은 이에 대해 “현지 우리 공관은 탈옥 사실 인지 직후부터 주재국 유관기관과 신속한 검거를 위해 지속 요청 및 협의하고 있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어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현지 피의자 검거를 위해 지원할 것”이라며 “경찰청은 외교부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방안 마련에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김미영 팀장이 보이스피싱 및 대출 권유 스팸 문자 업계의 최고봉으로 꼽히기 때문에 김미영 팀장의 정체에 관해서도 관심이 주목된다.
‘김미영 팀장’이라는 말은 지난 2011년부터 전화 금융 사기에 이용되면서 일종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이 김미영 팀장을 사칭한 인물이 사이버 사기 수사 전문 경찰 출신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
10년 만에 필리핀에서 붙잡힌 박 모 씨는 과거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등에 근무한 경찰 출신으로 지난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임 직후 박 모 씨는 지난 2012년 보이스피싱 조직을 만들어 대출을 거부당한 20만 명의 명단을 빼낸 뒤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약 400억 원에 달하는 사기를 친 것으로 확인됐다.
박 모 씨는 이를 위해 중국 해커를 고용해 금융권 서버 내의 명단을 빼돌렸다. 과거 사이버수사팀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살려, 자신이 수사했던 보이스피싱범들의 수법을 그대로 쓴 것으로 추측된다.
더욱 놀라운 점은 박 모 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자신이 수사했던 피의자 3명을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400여 명의 조직원을 모아 보이스피싱 사기를 치던 박 모 씨는 한 제보자에 의해 충남의 한 경찰서에서 체포됐다.
김미영 팀장의 존재를 제보했다는 제보자는 현재 보이스피싱조직원들에게 협박받는 것으로 알려져서 충격이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잡히며 제보자의 신원이 같이 노출됐다는 점에서 제보자는 불안에 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제보자는 “다른 사람들을 다 잡아넣고 니는 똑바로 살 거 같냐. 니는 죽을 것이다. 한국에 우리 조직이 얼마나 있는 줄 아냐. 제 몸을 다 잘라서.”라는 내용의 협박 문자를 수시로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조직원 400여 명 중 40여 명만 검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조직을 이끄는 수장인 박 모 씨가 한국의 경찰이었다는 점에서 제보자의 신변이 위협받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범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 조직 내의 문제로 퍼질 수도 있다.
1세대 보이스피싱 조직을 이끈 박 모 씨의 이전 직업이 경찰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 조직 내부가 발칵 뒤집힌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박 모 씨가 검거됐다는 기사와 함께 경찰청에 근무하는 익명의 사용자가 “수뢰죄로 해임된 저 사람은 경찰이 아니다. 그걸 잡은 사람이 경찰임을 알아줘야 한다. 외국에 있는 범죄자를 잡는다는 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영혼을 갈아 넣어서 잡는 거다”와 같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수뢰죄로 해임되는 사람은 처음 본다. 경찰 조직 내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기 때문에 일반화시키면 안 된다다. 열심히 일하는 다른 경찰분들이 박탈감을 느낄까 봐 슬프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른 익명의 한 사용자는 “검거한 수사대 직원이 진짜 고생했다, 저건 초대박 검거 프로젝트 수준이다”라고 말하며 충청도의 한 경찰서 수사대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
또한, 2년 전 공개된 박 모 씨의 체포 영상에는 “대한민국에 김미영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통째로 해 먹었는데, 전직 경찰이라니 무섭다.”, “경찰로서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뇌물로 옷을 벗은 것뿐만 아니라 경찰 시절의 노하우를 범죄에 사용하냐. 가중처벌이 필요하다”와 같은 댓글이 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박 모 씨의 탈옥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평가한다. 필리핀의 특성상 감옥 내에서 마약 거래가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교도관 매수 역시 자유롭기 때문에 돈만 쥐여줬다면 이감 과정에서 이루어진 탈옥이 합의가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어 필리핀의 교도행정, 뇌물 수수 체계가 한국과 달리 엄격하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 또한, 박 모 씨는 인도네시아로 망명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박 모 씨가 탈옥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는 약 2,330만 원을 내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모 씨가 다시 경찰에게 잡힌다고 가정해도 경제범죄의 특성상 형량이 높게 선고되지는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례로 국내에서 100억 원대 이상의 사기를 치다가 잡힌 일당이 3년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사기범들의 형량이 낮은 이유는 한국 사법 체계 내의 경량화 처벌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박 모 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죄를 짓고 형을 선고받으면 국내 송환이 지연된다는 점을 악용해 ‘허위 범죄’를 저지르며 약 2년 넘게 송환 절차를 지연시키다가 탈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으로 도피한 범죄자의 상당수가 이런 수법을 악용하고 있는데, 박 모 씨의 경우 경찰 출신이기 때문에 송환 절차 지연 방법을 더 자세하게 알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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